앞선 글을 정리한다는 차원에서 적어본다.
주류의 국민소득 계상은 과다 계산될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이건 오랜 세월전 외국 학자가 주장한 바도 책에선가 읽어본 듯한 기억이 있다.
당시는 공공재의 존재가 핵심이다. 공공재는 거래단위에서 계상되지 않다보니, 공짜의 존재는 돈으로 계산한 국민소득은 적게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질적인 경제가 적게 평가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그리고 본인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이자다.
이자를 단지, 생산요소소득으로 정의한다면, 당연히 이자소득은 국민소득에서 제해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금융시대에 맞는 국민소득 계산은 적정할 수 없고 또 이자 차익에서 돈을 번 은행 등의 모든 수입은 국민소득에서 제해야한다는 것도 완전히 정확하다고 할 수 없다.
그렇지 않고 이자를 소비금융의 거래치는 국민소득에 넣는다면 이또한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자라고 하니 복잡하지만, 배당, 보험금 모두 놀ㄴ이 될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참고로 20세기 경제학에선 국민소득에는 농민들의 자가 생산 소비, 가사활동(주부-) 등이 계산되지 않고 복지 지표로선 기능하지 않는다고 배웠다.
결론적으로 개인의 소득합은 최종생산물의 부가가치합과 현재의 계상으로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지출, 생산, 분배 국민소득이 일치해야한다는 삼면등가의 법칙은 당위론적인 이론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사실이라면, 총국민소득에서 국민수를 나누어 구하는 개인소득도 한계가 있다.
황혼이 밤을 불러 달이 떠도
고독에 떨고있는 가시나무새
어둠이 안개 처럼 흐르는 밤에
환상의 나래 펴네
그대 곁에 가고파도 날을 수 없는 이 몸을
그대는 모르리라 가시나무새 전설을
가시나무새 가시나무새
날을 수 없네 날을 수 없네 서글픈 가시나무새
찬 바람 이슬 내린 가지위에
외롭게 떨고 있는 가시나무새
한숨이 서리되어 눈물 흘러
님 찾아 날을 수 없네
그대 곁에 가고파도 날을 수 없는 이 몸을
그대는 모르리라 가시나무새 전설을
가시나무새 가시나무새
날을 수 없네 날을 수 없네 서글픈 가시나무새
찬 바람 이슬 내린 가지 위에
외롭게 떨고 있는 가시나무새
한숨이 서리되어 눈물 흘러
님 찾아 날을 수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