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끝
노동의 종말은 희극일까, 비극일까?
옛날 밭일할 때면, 호미 하나가 가져다 주는 유용함은 대단했다. 어느덧 기계는 우리의 노동을 변화시켰으며 더욱이 이제 우리 일자리를 없애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오늘날 어마어마한 상품 생산에도 오히려 사회 전체가 더 어려워지는 것은 왜 그럴까 생각해볼 일이다.
결론적으로 말했을 때, 인간의 욕망이 유한하지 않는한 노동은 사라지지 않는다. 더욱이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킬 자원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또 상품 생산에는 꼭 손이 가야 하는 일이 있게 마련이고,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킬 노동은 쉽게 자동화시키지 못하는 노동이 많으며, 끊임없이 창출되고 있다. 로봇이 로봇을 스스로 재생산할 수 없다는 점도 감안해야한다.
그래서 부정적인 관점에서 보면 노동의 종말은 또다른 불행, 특정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사회로 재편시킬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실업의 만연은 실물시장에 상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런 실업의 해결은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과 함께, 당장은 넘치는 상품을 더불어 먹고사는 지혜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새로운 일자리는 불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옛날 사라진 불편한 노동(불편하다는 의미는 자동화가 아니란 의미 뿐 아니라 덧붙여 종속적인 노동관계- 오늘날 실물시장의 과잉에서 사용자의 어려움과 동시에 피고용자의 불리한 계약관계를 만들어내기도 했다.)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어 경계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린 다시 물자절약을 외칠 시대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노동의 종말이 일 안하고 먹고사는 무릉도원을 가져다 줄 수 있다거나,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로의 진화를 걱정하는 것 모두 이롭진 않겠다. 한편 한 석학의 책제목에서 나온 '노동의 종말'이란 말이 너무 잘 표현하고 있어 용어을 빌려 썼지만, 해당 책 내용과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사랑이 저만치가네 나 홀로 남겨놓고서
세월아 멈춰져 버려라 내님이 가지 못하게
이제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네 사랑이 떠나가네
나는 죽어도 너를 잊지는 못할거야
아침이면 떠날 님아
사랑이 저만치 가네
사랑이 떠나간다네 그밤이 다 지나가면
우리의 마지막 시간은 붙잡을 수는 없겠지
사랑이 울고 있다네 이별을 앞에 두고서
다시는 볼 수 없음에 가슴은 찢어지는데